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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두어 세대가 지나가자, 찬란하던 문명은 빛을 잃었습니다.

 30여년 전 여름, 미국 의회 의사당 앞에서 있었던 한낮의 모임을 마지막으로 극성 종말론자들의 피켓 시위도 막을 내렸습니다. 사람들은 관심을 갖기는커녕 소식조차 전해듣지 못 했습니다. 어느 도시에 가도 거리에는 사람 대신 무엇에게 밟혔는지 알 수 없는 버스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가로등의 기둥들이 아무렇게나 쓰러진 채 빼곡한 식물 줄기에 휘감겨 있었습니다. 대형 운송수단 중 가장 오래 운행되었던 기차 역시 모든 나라에서 운행을 멈추었습니다.

 이전과 같은 것은 시간에 따라 색이 변하는 하늘과 계절 뿐,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이전의 절반조차 되지 않는 인류는 퇴락하여 이제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밤낮 구분 없이 환하던 도시는 이제 해가 지면 산 속과 다름 없이 새카만 잠에 빠집니다. 이름도 남아있지 않은 정부가 무엇을 공표하든 그것은 국민들에게까지 닿지 않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계절이 바뀌어 갈 수록 많은 이들의 생명줄은 바람 앞 촛불처럼 흔들립니다. 가을이면 황금빛 곡식이 익어가던 들판에는 바짝 마른 회갈색 흙먼지가 날립니다. 사랑을 속삭이던 연인들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도시의 강변에는 겨우 살아남은 새 한 마리가 담벼락을 다닥다닥 뒤덮은 덩굴의 잎을 훑고 있을 뿐입니다. 조급한 경적 소리로 꽉 찼던 대도시의 도로에는 바람이 스치며 낡은 시멘트 부스러기를 떨어뜨리는 소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동식물과 폐허가 된 것들 뿐인 이 멸망의 세대에도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 누가, 언제, 어떻게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라 구석구석에 후세대 보호관리국의 이름이 붙은 전단지가 나뒹굴기 시작했습니다. 형편없이 구겨진 낡은 종이 위에 최후의 잉크로 쓴 것처럼 보이는 소박한 전단지는 얼핏 보면 어느 집 창고에서 바람을 타고 흘러 나온 추억의 편지 쪼가리 같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주인 잃은 편지들이 거리를 떠도는 것은 꽤 흔한 일이었거든요. 대부분은 그 전단지를 무시하고 살아갈 길을, 혹은 죽음을 맞이할 아늑한 장소를 찾으러 다시금 제 갈 길을 갔으나, 목격자 중 극히 일부는 이 기관을 찾아 나섰습니다. 

 IN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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