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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는 이 세상에 아주 많은 사람이 살았다고 하죠.

 

 약 20만년 전 현생 인류가 출현한 이래 그들의 문명은 초 단위로 빠르게 발전해 왔습니다. 땅을 딛고 선 그들은 곧 물 위에 떠서 노를 젓는 법을 알았고, 가장 넓은 물인 바다와 그 위의 하늘을 날았고, 하늘보다도 높은 곳을 동경해 중력을 알지 못 하는 우주까지 도달하여 많은 위성과 행성과 은하에 그들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45억년의 세월 중 고작 0.004%의 역사만을 가진 인류는 그 어떤 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계속해서 살아남아 대를 이어 왔습니다.

 2020년 12월, 원인 불명의 지진이 각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보고되었습니다. 큰 지진이 여러 차례 있은 후에도 일주일 가까이 여진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 불가사의란 없을 것만 같이 굴어왔던 인류의 학자들은, 대다수의 여론이 불안에 휩쓸리지 않도록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고 둘러대었습니다. 관측된 강도에 비해 사람의 피해가 크지 않았던 데다 학계의 발언 역시 긍정적 지지를 얻어 이 일은 연말의 들뜬 분위기 속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차츰 잊혀져 갔습니다.

​ 지구 곳곳에 월등한 번식력을 가진 식물들이 대거 출현한 것은 그 다음 해였습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씨앗에서부터 자라난 그 종은 단풍처럼 생긴 커다란 잎 갈래갈래 끝마다 작은 잎들이 달려있는 덩굴 식물이었는데, 잠깐 눈을 뗀 사이에도 한 뼘씩 자라나 근처의 돌담과 나무와 바닥과 건물을 휘감았습니다. 그 덩굴이 자란 곳마다 잎을 먹은 동물과 곤충의 시체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세계 각국은 그 식물을 해로운 것으로 규정하고 박멸하려 했지만, 잔뿌리까지 뽑아 제거해도 다음 날이면 사람의 키 만큼 자라 있는 것들을 무슨 수로 제거할 수 있었겠어요?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학회와 연구협회들이 이 식물의 연구에 밤낮없이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이 식물에게서 채취한 샘플의 세포는 다음 날이면 둘로 나뉘었다가, 다음 날이면 다시 하나가 되었다가, 그 다음 날이면 서른 개가 되었고, 그마저도 개체마다 규칙이나 일정성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실로 오랜만의 난관이었습니다. 인류가 이렇다할 해결책을 내놓지 못 하고 근처의 주민들을 '안전지대'로 이주시키는 동안, 더 많은 동물과 곤충들이 죽어나갔습니다.

 그 덩굴 식물을 시작으로 세상에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나무들과 키가 큰 풀들이 산과 들에 무성하게 자라났습니다. 이것들은 인간이 만든 어떤 제초제에도 반응하지 않았고, 섭취한 동물과 곤충들을 죽이거나 기형으로 만들어 인류가 눈부시게 빚어놓은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덩굴의 무게를 견디지 못 한 전신주가 쓰러져 전기가 끊어졌고, 시커멓게 변한 바닷물의 아래에서는 가시 투성이의 산호들이 자라나 해저 케이블을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하기 시작했습니다. 농가의 가축들이 하루 아침에 세 배나 커진 산짐승들에게 몰살당하고, 양식장의 어류들이 집단으로 폐사하는 일이 반복되자 인류는 불안에 떨었습니다. 그들은 위기를 직면할 때마다 하던 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이 사태를 해결할 방법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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